가상 집짓기
- Mimi Son
- Jan 1
- 2 min read
Updated: Jan 13
하루 종일 온라인을 헤매고 다녔다. 소소하지만 내 주소와 명패를 단 집을 지으려고.
가상 세계에 집을 마련하는 일이 실제 세계에서의 과정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모르는 일도 아니었지만 장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라 시뮬라시옹을 읽고 있는지라 모든 세상의 이치를 해석하는 나의 눈초리가 '진짜와 가짜 감별'이라는 방법론에 쏠려있다.
공간을 내주는 호스팅 업체를 골라, 도메인이라는 주소 만들기 서비스를 받고, 장기 투숙을 위해 2년 계약을 맺었다. 계약이 끝났음에도 시도 때도 없이 더 좋은 조건의 새 삶을 꾸리라며 업그레이드를 장려하는 광고가 난무한다. 한 달에 커피값 정도만 줄이면 프라이빗하고 안전한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고 에둘러대며 부추긴다.
주소까지 달고 버젓하게 내 것인 가상공간을 얻었지만, 이 공간을 나답게 꾸미기란 실제보다 더 어렵다.
형편에 맞춰서 이케아와 다이소를 향하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서 '나만의' 스타일을 찾겠다고 예리한 촉을 발휘하려 애쓰지만, 그래봤지 이 집도 저 집도 비슷한 모양새를 갖추고 살 뿐이다.
온라인도 이케아나 다이소같이 엇비슷하게 삶을 치장하라는, 대충 쓰다가 버리라는 듯 여러 템플릿을 서비스한다. 폰트, 컬러, 레이아웃 등 변형과 확장의 한계가 결정된 시스템 안에서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겠다는 생각이 순진했음을 이내 깨닫는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자본이라는 구조 안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창작은 없고 조합만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보다 한 번 더 조합의 조합을 함으로써 마치 창작하고 있다는 착각만 느낄 뿐이다.
그러다가 더 창작의 욕구가 넘칠 때 우리는 '업그레이드 버튼을 눌러 새로운 구매를 확정한다.
근데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돈을 쓰고 있는 것일까?
우리 동네 치즈 가게 사장님이나 내가 좋아하는 스탠딩 커피에서 쓰는 돈은 내가 구매하는 명목이 명쾌함도 있지만 그 돈을 받으며 내게 던지는 미소나 감사의 인사가 나를 뿌듯하게 하기라도 하는데, 도무지 온라인에서는 내 돈을 받는 직접적인 사람의 감사의 메시지가 전혀 없지 않은가.
내 모든 데이터를 관리하는 어마무시하게 고마운 분들께 나는 직접적으로 정령 인사 한마디 못 건넨단 말인가? 그들이 나를 배신하고 어느 날 내 데이터를 싹쓰리 지우기 전에 친분이라도 쌓아 놓으면 연민의 감정을 갖고 내 데이터들을 영구히 보존해 주려고 노력이라도 하지 않을까?
어떤 낙관적이고 관대함이 이것들을 허락하는 것일까? 아니, 어떤 무기력함이 이것들을 수용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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